“누가 코드를 잘못 입력시켰거나, 대통령께서 잘못 알고 있다.” 정확하게 15년 전 이맘때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농축산관련 기관단체는 목숨을 걸고 직거래에 매달려야만했다. 그 와중에 여기저기서 귓전을 때린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하면서 다시 직거래가 농축산물유통 개혁의 핵심키워드로 떠올랐다. 농축산물유통구조를 1단계로 단축해 생산자는 더 비싼 값에 농축산물을 팔고, 소비자는 더 싼 값에 농축산물을 구입하도록 해야 한다는데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지당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15년 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농축산물 직거래를 언급하자 관련단체가 직거래장터 개장에 목을 걸다시피 했는데도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직거래는 유통단계를 대폭 축소해 중간마진을 없애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상생할 수 있는 거래시스템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면이 많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비용을 감안하면 직거래는 효율적이지도 경제적이지도 않다. 직거래가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단점이 더 많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농축산물 직거래가 정착되지 못한 이유이다. 여기에다 최근 농촌은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다. 모든 농업인이 직거래에 나서야 한다면 속된말로 농사는 누가 지어야 하나? 직거래를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농축산물유통 개혁의 핵심은 직거래가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농축산물 유통채널은 소비지를 중심으로 다양해졌다. 산지는 그동안 산지유통인 중심에서 농협 산지유통센터와 민간인 산지유통센터로 무게중심이 많이 옮겨졌다. 소비지도 기존 도매시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이른바 신유통채널로 불리는 대형마트, 외식업체, 단체급식업체가 있다. 친환경농축산물을 주로 취급하는 생협, 학교급식업체도 소비지유통주체로 부상하고 있다. 여기에다 로컬푸드도 새로운 유통방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들 유통주체는 나름대로 장단점과 특징을 갖고 있다.
농축산물유통 개혁은 이들 유통주체의 장점은 더욱 키우고, 단점은 보완하는데 초점이 맞추면서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먼저 산지유통은 농협 중심으로 산지유통센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소비지유통의 경우 농축산물 유통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도매시장의 효율성을 더 제고해 가격결정과 분배라는 막중한 역할과 기능을 더욱 원활하게 수행토록 해야 한다. 초창기 농축산물 산지가 선호하는 유통채널이었지만 지금은 불공정거래로 원성을 사고 있는 대형마트는 소비지 유통주체의 기능과 역할은 살리면서 산지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외식업체와 단체급식업체, 학교급식은 우리 농축산물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소비할 수 있는 주체로 키워나가야 한다. 최근 새로운 관심을 끄는 생협도 거시적인 안목에서 유통주체로 육성시켜 나가고, 운동체적 성격이 강하지만 새로운 시대적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는 로컬푸드는 지역적 특성에 맞게 활성화시키면 어엿한 유통주체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농축산물유통 개혁의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는 풀어야할 과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비자와의 소통이다. 자연재해에 의한 농축산물가격 폭등은 유통개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분명 아니다. 하지만 자연재해 등으로 배추와 상추 가격이 폭등해 ‘금배추’ ‘금상추’라는 표현이 언론매체에 등장하는 순간 “그동안 (유통개혁을 위해) 뭐 했느냐?”는 질타가 쏟아질 게 뻔하다. 정부와 소비자, 정부와 유통주체, 정부와 생산자, 소비자와 유통주체, 소비자와 생산자, 생산자와 유통주체 간 소통이 없는 유통개혁은 사상누각이 될 수밖에 없다. 소통이야 말로 농축산물 유통개혁의 시작이자 화룡점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