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데 한국인은 집단주의 성향이 강하다. 왜 그럴까? 결국 먹을 것을 구하는 농업방식의 차이가 그 결정적 원인일 것으로 생각한다. 목축을 주로 하면서 삶을 유지했던 유럽인들은 넓은 초지에서 가족 단위로 서로 떨어져 살게 되었는데 그래서 자연스레 개인주의 생활방식을 발전시켰고,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들은 모내기나 수확작업을 함께 모여서 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에 점차 집단주의 문화에 익숙하게 됐을 것이다.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사를 나눌 일이 많아 ‘굿 모닝(good morning!) 좋은 아침!''인데, 서로 아는 사람끼리만 인사를 하게 되는 우리사회에서는 ‘그 동안 별일 없었습니까? 식사는 잘 했습니까?’ 등의 인사를 나누게 된다. 지금은 우리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모르는 사람끼리 인사를 나눌 일이 많아졌는데, 유럽식으로 굿모닝!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르는 사람에게 밥 잘 먹었냐고 인사할 수도 없고, 그래서 천장만 쳐다보며 엉거주춤 하다 엘리베이터가 멈추면 재빨리 내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벼농사로 인한 집단주의 문화는 한국, 중국, 일본에서 그 양태가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 집단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곳이 일본이라면, 중국은 그 정도가 가장 약하고, 한국은 지정학적 위치에 걸맞게 그 중간쯤 되는 것 같다. 집단주의는 기본적으로 구성원 상호간에 긴밀한 협동을 요구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구성원간에 치열한 경쟁을 유발하게 된다. ‘사돈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거나, 남의 눈을 의식해 잔칫날 화려한 음식을 차리는 모습은 그 치열한 경쟁에서 나오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집단 구성원간의 건전한 협동과 치열한 경쟁! 나는 이것이 20세기 대한민국 한강의 기적을 일군 또 하나의 원동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벼농사 문화로부터 형성된 문화적 DNA의 결과물인 것이다. 인간사회에서는 한사람의 힘 보다 여러 사람의 힘이 합쳐졌을 때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누구나 안다. 한국경제가 급속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인 모두가 똘똘 뭉쳐 우리 앞에 놓여있던 온갖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집단주의 문화에서 급속도로 개인주의 문화로 바뀌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 경쟁만 있고 협동은 잘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정말로 협동이 필요한 농산물유통에서조차 협동하는 모습을 만들어내기 쉽지 않은 현실이다. 우리가 개인주의 문화에 지나치게 몰입하게 되면 그 토양에서 잘 살 수 있는 것은 상업적으로 잘 조직화된 기업들 뿐이다.

기업들의 탐욕스러운 이윤추구를 견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협동조합이야말로 건전한 협동을 기본으로 하는 ‘착한 자본주의’의 유력한 실천수단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벼농사를 기본으로 하는 집단주의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이 집단주의를 바탕으로 한 협동과 경쟁의 문화가 21세기에도 한국적 문화로 더욱 발전돼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만 더욱 치열해지는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지켜낼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농산물유통에 있어서도 농업인 모두가 협동하는 마음으로 농산물을 출하하고 시장을 잘 관리한다면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가가치들이 결국 생산자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오게 될 것이다. 농업분야에서 협동의 문화를 모범적으로 꽃 피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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