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태평양경제동반자 협정(TPP, Trans-Pacific Partnership). 참 어렵고 생소한 말이다. FTA(자유무역협정)는 그래도 수 년 간 귀에 익어온 말이라 협상의 의미나 영향 등을 대충이라도 머릿 속에 그려볼 수 있지만 TPP는 그렇지가 않다.

TPP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나라들이 관세철폐와 경제통합을 목표로 하는 자유무역협정으로 현재 미국을 위시해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 호주, 페루, 베트남, 말레이시아, 캐나다, 멕시코 등 11개국이며 여기에 일본이 지난해 4월 사전 협의 절차를 거쳐 미 의회의 승인 절차를 밟고 올 7월부터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상태다.

이 협상은 대다수의 나라들이 농업강국이라는 점에서 위협적이기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무역자유화에 예외를 두지 않으며 모든 품목의 관세철폐를 목표로 하고 있는 등 FTA보다 더 높은 수준의 협상이라는 점에서 농업계를 벼랑끝으로 내몰고 있다.

TPP가 국내 농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잘 몰라도 그동안 농업계의 목을 죄 왔던 FTA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농업인들은 지난 15일 ‘TPP공청회’가 열리는 서울 코엑스로 새벽 기차를 타고 달려왔다. 이날 공청회가 열리는 행사장 앞에서 농업인들이 울분의 기자회견을 했다. 농업인들의 반발이 무서웠던지(?) 공청회장은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들이 대거 등장해 삼엄했으며 공청회 중단을 요구하는 농업인들을 마치 정치 테러범 연행하듯 끌고 나가면서 공청회장은 아수라장이 됐었다.

이날 농업인들이 거의 퇴출(?)당하고 속개된 공청회에서는 그동안 추진됐던 많은 FTA공청회 때와 달리 ‘신중론’을 주장하는 통상전문가들이 적지 않아 ‘찬성론’을 주장하는 전문가들과 팽팽한 입장차를 보였다.

이미 TPP에 가입돼 있는 대다수의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중인 상황에서 굳이 추가적인 출혈을 감수하고 TPP에 참여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손해를 감수하면서 TPP에 참여한 이유는 우리와 달리 미국과의 FTA를 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과 다르다. 미국과의 FTA를 통해 충분히 자유무역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상황이다. 미국 이외에도 상당수 국가들과 FTA를 체결했거나 협상중인 만큼 기존에 추진한 FTA 효과를 타진해 본 이후에 TPP가입 여부를 판단해도 늦지 않다는 게 통상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특히 그동안 FTA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시장개방에 앞장서 왔던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날 공청회에서 “TPP 참여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단언하고 “거대담론에 휩쓸려 의사결정을 잘못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또 한홍렬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와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 교수 등 정통한 경제학자들 역시 TPP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분석을 내놓았다.

우리 경제에 별다른 실익이 있지 않을 것이란 전문가들의 지적을 뒤로하고, 식량안보시대 우리 농축수산업 시장을 송두리째 내어주는 TPP협상을 굳이 이 시점에서 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최상희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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