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태 연매출 13억, 연간 체험객 2만 명 육박
비결은 ‘경영하는 공동체’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이호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생활·경제공간연구실장
이호림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생활·경제공간연구실장

영국 리버풀의 안필드(Anfield). 한때 쇠퇴의 길을 걷던 이 도시의 변두리에 자리한 작은 동네 빵집 하나가 마을의 흐름을 바꿨다. 이름은 홈베이크드(Homebaked)’. 원래 100년 전통의 제과점이었으나 지역의 침체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이 가게를 그냥 없애기엔 아까웠던 주민들은 직접 협동조합을 꾸려 빵집을 경영하자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다. 다시 문을 연 홈베이크드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지역 재생의 앵커(Anchor)가 됐다. 매주 경기장을 찾는 수천 명의 손님을 맞으며 연 매출을 지역 임금과 먹거리로 환원했고 인근 빈집을 매입해 주택 공유사업까지 확대했다. 이 작은 빵집은 그 자체로 마을의 기업이 됐고 주민 중심 경영체계는 도시의 한 켠을 되살리는 원동력이 됐다.

홈베이크드의 사례는 단지 하나의 가게가 아니라 지역이 스스로 경영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충남 서산시 중왕어촌계도 같은 고민 끝에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감태 가공공장, 체험마을, 수산학교, 귀어타운 등 다양한 프로젝트들이 이어지고 있지만 핵심은 외부 지원이 아닌 마을이 직접 경영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데 있다. 지원은 수단이고 경영은 지속가능성의 조건이었다.

지금의 중왕어촌은 더 이상 단순한 어촌공동체가 아니다. 하나의 어촌경영체, 그리고 사람이 돌아오는 생태적 마을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 마을이 기업이 되다

중왕어촌은 2014년 어촌체험마을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경영하는 마을이 되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주민 44가구가 직접 자금을 모아 체험사업을 시작했고 바닷가 갯벌에서 채취한 감태를 말리고 포장해 손님에게 파는 경험은 내가 만든 것을 파는 일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줬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16년 어촌 6차 산업화 시범마을로 선정, 감태 가공공장을 유치하면서 중왕마을은 작은 생산공장을 가진 기업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은 안전관리인증기준(HACCP) 인증을 받고 해품감태라는 브랜드를 달아 해외로도 수출을 시작했다.

박현규 중왕어촌계장은 그때부터 마을이 경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귀어한 인물로 마을의 사업 하나하나에 기획의 관점을 더했다. 수익이 나면 끝이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배분하고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투자할 것인가를 함께 고민했다.

중왕어촌계는 어촌공동체를 넘어 하나의 어촌경영체이자 사람이 돌아오는 마을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왕어촌계 전경.
중왕어촌계는 어촌공동체를 넘어 하나의 어촌경영체이자 사람이 돌아오는 마을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사진은 중왕어촌계 전경.

 

# ‘사업이 아닌 운영이 중요

중왕어촌마을은 2019년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돼 선착장 정비·친수공간 조성·도로개선 등이 이뤄졌다. 어촌뉴딜300사업 과정에서 중왕어촌계는 이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운영의 시대임을 절감했다.

특히 수산학교 건립은 전환점이었다. ‘가로림만 청년수산학교라는 이름으로 완공된 이 건물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사람을 유입하고 역량을 키우는 플랫폼이 됐다. 마을은 이 공간을 중심으로 귀어인 교육, 청소년 체험, 주민 워크숍을 이어가며 마을 내외의 흐름을 연결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도전에 힘입어 중왕어촌계는 지난해 국내 최초의 단지형 귀어타운 사업지로 지정됐다. 단층·복층형 14세대 규모의 귀어타운 하우스는 단순한 거주공간이 아닌 마을의 인구 구조를 바꾸는 기폭제였다.

귀어타운에 입주한 40~60대 도시민 14가구는 마을로 유입되고, 수산학교 교육을 수료하고, 감태 공장·공동어장 운영에 참여하면서 단절된 외부인이 아닌, 함께 일하고 살아가는 이웃이 됐다.

여기에 더해 마을은 귀어인 정착 프로그램도 체계적으로 구성했다. 수산학교 교육 이수 후에는 귀어인의 집에 시범 거주할 수 있고 마을 어르신과 연결, ‘간사 제도를 통해 어장관리와 기술을 함께 익힌다. 이에 힘입어 2012년 이후 마을로 귀어한 18가구 중 단 한 가구도 이탈하지 않았다.

중왕어촌계는 정부의 정책사업을 통해 3000만 원에 불과했던 감태의 매출액을 13억 원대까지 늘렸다. 사진은 감태 건조작업을 하고 있는 중왕마을 주민.
중왕어촌계는 정부의 정책사업을 통해 3000만 원에 불과했던 감태의 매출액을 13억 원대까지 늘렸다. 사진은 감태 건조작업을 하고 있는 중왕마을 주민.

 

# 수익-공유-재투자의 선순환마을 자체 연금제 도입

중왕어촌계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매출이 아니라 수익의 구조화와 배분 방식에 있다. 감태 가공을 통해 발생한 수익은 투명하게 운영되며 일부는 마을 연금제로 환원된다. 2022년부터 마을은 일정 수익을 적립해 만 75세 이상 어르신에게 매월 10~15만 원씩 지급하고 있다.

박현규 중왕어촌계장은 관광객 한 명이 쓰고 간 돈이 주민의 연금이 되는 구조를 만든 것이라며 이게 어촌의 지속 가능성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중왕마을은 외부 회계감사 제도를 도입해 기업처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으며 마을에는 총 9개의 분과가 조직돼 있다. 특산물가공팀, 수산학교팀, 시설관리팀, 음식전담팀, 갈등조정팀 등으로 나뉘며 귀어인과 원주민이 혼합 구성된 협업조직이 각 팀을 운영한다.

 

# 단일마을을 넘어 권역경영으로가로림만의 확장 실험

중왕어촌계만 잘해서는 안 됩니다. 가로림만 일대 전체가 활성화돼야 지역이 살아날 수 있습니다.”

박 계장은 마을을 넘어 권역 전체를 활성화해야한다고 말한다. 이에 따라 추진되고 있는 것이 권역 단위 공동경영이다. 실제 서산시는 중왕마을을 중심으로 팔봉면 호리, 대산읍 오지리 등 어촌뉴딜300사업지를 연계한 가로림만형 어촌벨트를 기획하고 있다. 이 지역은 이미 서산 뻘낙지 먹물축제등 공동 행사를 통해 상호 협력 기반을 구축했고 앞으로는 수산물 유통 공동브랜드, 체험프로그램 공동 기획 등 마을 간 연합 경영모델로 확장될 전망이다.

 

# 지속가능한 어촌, 지원이 아닌 경영이 해답

중왕마을은 어촌 6차 산업화 이후 감태 소득만 9년 만에 46배 성장, 연매출 13억 원을 기록했다. 연간 체험객도 2만 명에 육박하고 귀어인 유입률도 전국 평균 대비 월등히 높다. 그러나 진짜 주목할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주민이 경영한 결과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박 계장은 어촌에 대한 지원이 일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다면 경영은 지속가능한 어촌의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박 계장의 말처럼 중왕어촌계는 단지 한두 사업의 성공을 넘어서 마을이 하나의 기업처럼 운영될 수 있는 구조적 혁신을 이뤄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왕어촌계는 더 많은 사람을 불러들이고 있다. 그리고 그 마을을 지키는 힘은 바로 경영하는 공동체라는 철학에 있다.

 

# 어촌경영을 위한 리더 양성 정책이 시급

중왕어촌계의 사례는 리더의 중요성을 분명히 보여준다. 박 계장과 같은 리더의 역할이 없었다면 체계적인 마을 경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은 어려웠을 것이다. 중왕마을과 같은 사례를 전국적으로 확산하려면 현재 어촌정책에서 미흡한 리더 양성 시스템의 구축이 매우 절실하다.

농촌은 이미 20년 전부터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주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활성화를 성공적으로 이뤄 왔다. 어촌 역시 시설 중심의 하드웨어 투자에서 벗어나 사람 중심의 소프트웨어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전국적인 어촌 리더 양성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어촌지원센터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현장 밀착형 리더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지속적인 재교육과 리더 간 네트워크 형성을 지원하며, 어촌 리더에 대한 공식적인 인증과 보상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어촌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역을 이끌 리더를 체계적으로 발굴하고 양성, 스스로 경영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다. 이를 위해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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