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중심 마을 운영으로 '성과'
공동체 통합·자생적 성장기반 구축은 과제
포장마차 11개소와 전망카페 운영
연간 약 8000만 원 수익 창출
지역 청년·귀어인·취약계층에도 입점 기회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이승혜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연구원]

 

경주시 감포읍에 위치한 나정항에서는 정책사업을 통해 조성한 인프라를 직접 운영함으로써 새로운 어촌의 발전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나정항의 전경.
경주시 감포읍에 위치한 나정항에서는 정책사업을 통해 조성한 인프라를 직접 운영함으로써 새로운 어촌의 발전모델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은 나정항의 전경.

 

경북 경주시 감포읍 해안을 따라 자리한 작은 포구 나정항. 한때 어선이 드나들며 분주했던 이 항구는 이제 고요하다. 배는 줄었고 일손은 모자란다. 어족자원은 줄고 사람은 떠났다. 남은 건 마을의 풍경과 고령화된 주민들뿐이었다.

그러나 이 조용한 어촌에 새로운 움직임이 시작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차박 명소’로 알려지면서부터다. 주말이면 캠핑카가 줄지어 들어오고 바닷가를 따라 외지인들이 몰렸다. 외부인들의 발길은 늘어났지만 마을 경제에 실질적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방문객들은 마을의 자연경관과 공간만 소비하고 떠났고 지역 상권과 주민 소득은 여전히 침체된 상태였다. 나정항 주민들은 ‘소비되는 공간’이 아니라 ‘운영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게 나정항은 질문을 던졌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결심했다. 외부에 기대는 마을이 아니라 스스로 운영하는 마을이 돼 보자고.

# 시설이 아닌 운영을 고민한 마을

나정항은 2020년 해양수산부의 어촌뉴딜300사업 대상지로 선정되며 변화의 출발선을 통과했다. 총 73억 원의 예산을 바탕으로 이안제, 선양장, 물양장, 어구보관소 등 어업 기반시설과 더불어 포차마당, 전망카페, 해안산책로 등 생활·관광 인프라가 함께 조성됐다.

그러나 마을의 진짜 고민은 ‘어떻게 지을 것인가’가 아니라 ‘누가 운영할 것인가’였다. 단순히 시설을 갖추는 것만으로는 마을이 지속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나정항은 마을 협동조합을 조직해 새로 조성된 포차마당, 전망카페, 해안산책로 등을 직접 운영하거나 임대·위탁 방식으로 관리하는 구조를 실험했다. 더 이상 마을 자산을 방치하지 않고 주민 스스로 운영하고 수익을 환원하는 모델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 조합이 만드는 새로운 경영의 방식

마을 협동조합은 조합장과 5인의 이사 체계로 구성돼 회계, 시설관리, 민원 처리 등을 직접 수행하고 있다. 조합장은 ‘내가 없어도 굴러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며 사무장 제도 도입을 추진하기 위해 현재 일부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는 등 공동체와의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또한 출자금 400만 원과 2년 실거주 조건만 갖추면 누구나 조합원이 될 수 있는 개방 구조로 조합을 운영하고 있으며 어촌계 역시 외부인의 유입에 유연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마을 협동조합이 단순 수익 창출을 넘어 마을 공동체를 넓히는 플랫폼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조합이 직접 관리하는 포장마차와 전망카페에는 지역의 청년과 귀촌을 꿈꾸는 도시 출신 주민들도 입점하고 있다. 이들은 단순 상업 활동을 넘어 마을 정기회의 참여, 공동 행사 지원, 환경 정비 등 마을 생활 전반에 적극 참여하며 내부 주민들과 협력하는 등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러한 노력으로 마을 협동조합은 단지 수익을 내는 조직이 아니라 마을 자산을 관리하고 공동체를 운영하는 지역 거버넌스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다만 현재 포차를 운영하는 일부 입점자들이 협동조합원으로 직접 참여하지 않고 개별 임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아 마을 운영의 주체성과 공동체성 간의 간극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 수익보다 구조, 운영이 답이었다

나정항 협동조합은 포장마차 11개소와 전망카페 운영을 통해 연간 약 8000만 원의 수익을 기록하고 있다. 이 수익은 크지는 않지만 지역 청년과 귀어인, 취약계층에게 입점 기회를 열어두며 수익 창출보다는 지속가능한 운영 구조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공동체 참여 기반의 운영은 전통적인 어촌 운영 방식과는 달리 귀어를 고민하는 청년, 마을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외지인에게 또 다른 길을 제시하고 있다.

협동조합의 개방적인 운영 구조는 눈에 띄는 단기성과로 이어졌다. 2022년 8월 4000만 원 수준이던 월 수익은 2023년 6월에는 8500만 원까지 늘었으며 해수부의 어촌어항재생사업 평가에서도 관리 우수사례로 선정되는 등 여러 지자체와 어촌마을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그러나 앞으로는 포차 운영자들이 협동조합원으로 직접 참여하는 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다. 단순히 공간을 임대하는 외부 입점자가 아니라 운영 주체 자체가 마을 주민이자 조합원이 돼야 진정한 공동체 운영이 가능하다. 수익 창출에 머무르지 않고, 마을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체계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지속가능한 어촌을 만드는 핵심 과제다.

# 네덜란드 마르켄에서의 단서

어업 쇠퇴, 인구감소 등으로 지역경제 침체를 겪었던 네덜란드 마르켄(Marken)은 마을 전체를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전환하는 전략을 택했다. 주민들은 직접 전통 건축과 의복, 어업 유산 등 지역자원을 활용한 컨텐츠를 구상하고 어업박물관과 체험장을 기획‧운영하며 그 수익을 다시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를 통해 마르켄은 과거의 어촌이 아니라 살아 있는 마을 브랜드로서 작동하고 있다.

나정항의 방식도 이와 닮아 있다. 마을 공동의 자산을 수동적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을 통해 스스로 자원화하고 관리하며 수익을 마을에 환원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포차와 카페를 직접 운영하고 그 수익을 복지나 지역 기반시설로 재투자하는 방식은 마르켄의 전략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다만 마르켄과 달리 나정항은 아직 운영 주체가 협동조합으로 완전히 일원화되지 않은 상태다. 포차 운영자들이 협동조합원으로 함께 참여하는 체계를 확립해야 나정항 역시 마르켄처럼 공동체 중심의 지속가능한 운영모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 지속가능한 어촌을 위한 다음 과제

나정항이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려면 보다 구조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포장마차, 카페 등의 임대는 초기에는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설 노후화, 임대료 하락, 입점자와 마을 간 갈등, 공동체 소외 등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외부 인력을 통한 공동체 확장 역시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기존 주민과의 생활방식 차이, 가치관 충돌, 의사결정 구조의 불균형과 갈등 등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 역시 내재하고 있다.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단순히 외부 수요를 흡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운영 주체를 협동조합 중심으로 재편하고 공동체 내부의 역할 분담과 규약을 명확히 설정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공간을 빌려주는 구조를 넘어 공간을 함께 ‘운영하고 관리하는 주체’로서 외부 입점자를 포섭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나정항이 보여준 모델은 중요한 출발점이지만 앞으로는 공동체 통합과 자생적 성장 기반 구축이라는 과제를 꾸준히 풀어나가야 한다.

# 누가 마을을 운영할 것인가

나정항의 실험은 다양한 지역에서도 참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마을의 공간을 외부에 빌려주는 방식에서 벗어나 마을의 일원이 직접 운영에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이 일시적 성과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가능한 모델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외부 수요에 의존하는 구조를 넘어 마을 내부의 성장 동력을 키워내야 한다. 현재 포차와 카페를 운영하는 일부 입점자가 협동조합원이 아니거나 마을 공동체와 긴밀히 연결되지 않은 구조는 지속가능성 측면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시설의 운영 주체와 공동체가 분리된 상태에서는 마을이 다시 ‘소비되는 공간’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물리적 인프라보다 누가, 어떻게 운영하고, 그 운영을 통해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느냐의 문제다. 단순히 외부인을 유치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운영하고 함께 성장하는 구성원을 마을 안으로 포섭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마을을 삶의 터전으로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주민과 새로운 구성원 간의 신뢰 형성, 역할 분담, 공동 목표 설정이 필수적이다.

이러한 변화는 단기간에 완성될 수 없다. 운영 체계를 바꾸고 공동체 문화를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에는 인내와 협력, 그리고 서로를 지켜보는 따뜻한 시선이 필요하다. 마을을 지속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힘은 물리적 시설이나 일시적 수익이 아니라 사람이 운영하고 사람이 살아가는 공동체 구조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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