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감 아닌 ‘데이터’로 조업…구룡포항, 디지털 어항의 미래를 열다
‘어디에서 잡아 어디로 보내는가’라는
어촌의 단순 구조 데이터 흐름에 맞춰 정제하고 연결해
AI에 최적화된 학습 환경 제공
부처간 칸막이 문제
지역마다 데이터 포맷‧통신 규격 달라 AI가 활용할 수 없는 구조
시범사업이 특정 지자체나 공모 선정방식에만 의존…전국적 확산에는 한계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은 AI기술을 접목,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어항을 그려나가고 있다. 사진은 구룡포항에 정박중인 어선.
경북 포항시 구룡포항은 AI기술을 접목,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미래 어항을 그려나가고 있다. 사진은 구룡포항에 정박중인 어선.

 

무더운 여름, 경북 포항 구룡포항에 발을 딛는 순간 낯선 기운이 감돌았다. 짠내 나는 바람과 방파제 위로 레이더가 돌고 수십 개의 CCTV가 어항을 묵묵히 응시하는 모습은 이곳이 단순한 어항이 아니라 미래 첨단어항을 준비하는 리허설 무대임을 짐작게 했다.

“이제 기계는 감시하지 않고 말을 합니다”라는 관계자의 짧은 한마디는 구룡포항이 디지털로 어촌의 미래를 준비하는 장소임을 깨닫게 했다.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물자 수탈의 아픔을 겪었고, 100여 년간 삶의 터전이 돼온 이곳은 현재 어획량 감소와 인구 유출이라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위에 ‘인공지능(AI)’이라는 새로운 변화의 물결이 스며들고 있다. 이곳은 디지털 기술이 어촌의 미래 각본을 함께 써 내려가는 예행연습의 무대가 되고 있다.

# 바다가 보내는 신호, 어촌의 두뇌를 깨우다

구룡포항은 지난해부터 디지털트윈 기반 어항 시범사업을 운영 중이다. 이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경상북도, 포항시,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등 다양한 기관이 함께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의 목적은 단순히 기술을 설치하는 것을 넘어 실시간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 어업인과 지자체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실행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있다.

사업에 활용되는 주요 기술로는 스마트 부표, CCTV 기반 어선 위치 파악 시스템, 해양환경 측정 센서, 디지털 유통흐름 추적, 어선이동 디지털트윈, 사물인터넷(IoT) 센서 월파 예방, 방파제 보행자 위험경보, 수산물 유통 디지털트윈 등이 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스마트 부표다. 수온(12m 수심 기준), 조류 속도와 방향, 용존산소량, pH, 염분, TDS(총 용존 고형물), ORP(산화환원전위), 전기전도도, 풍속, 파고 등 9종의 해양환경 정보를 실시간으로 측정하며 드론은 해면을 훑어 정보를 수집한다. 이렇게 수집된 정보는 어업인, 지자체, 해경이 어선 입출항 안전관리, 어장 환경 대응, 수산물 유통 최적화 등에 활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정치망어업이나 양식어업인을 괴롭히는 고수온이나 빈산소수괴를 파악해 어장 피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한다. 또한 대게 성어기에 하루 약 2000척의 어선이 몰려드는 구룡포항에서 어선 정박 위치나 위험 구역을 디지털트윈 플랫폼을 통해 관리하는 것은 단순한 감시가 아닌 운영의 디지털화이자 어촌사회 변화 물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지자체는 환경측정 센서의 데이터를 활용해 노후어선의 탄소배출량을 계산하고 교체 우선순위를 설정하며 항만 대기환경 측정 장비를 통해 항내 미세먼지, 악취 등을 분석, 정비와 정책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

구룡포항에 설치된 다목적 CCTV. 다목적 CCTV를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어항의 기능을 최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구룡포항에 설치된 다목적 CCTV. 다목적 CCTV를 통해 확보된 데이터는 어항의 기능을 최적으로 수행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 ‘감’이 아닌 ‘데이터’로 조업하는 시대

과거 어업인들은 ‘운(運)’과 ‘감(感)’에 의존해 조업 여부를 판단했지만 이제는 ‘데이터’를 근거로 판단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 어업인들은 전용 앱을 통해 실시간 기상정보, 해역의 수온, 조류 속도, 방향 등의 해양 데이터를 확인하며 조업 여부를 결정한다.

양식어업인 역시 해양환경 데이터를 기반으로 어종 변경이나 수확 시점을 조율한다. AI는 수천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이 어선 장비는 교체 시점입니다’, ‘이 구간은 사고 위험이 높습니다’와 같이 아날로그형 어업인을 조용히 돕고 있다. 2021년 스마트 국가어항 사업에서 인공지능형 CCTV, 레이저시각화 탐지‧거리측정(LiDAR) 등 다양한 장치를 활용한 스마트 기술 도입이 시도됐으나 현실화가 어려웠던 것과 비교하면 구룡포항의 성과는 더욱 값진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 기술보다 중요한 ‘표준화’와 ‘통합’ 

구룡포항에 설치된 장비들은 CCTV, 부표, 서버, 센서 등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적인 수준으로 기술 자체가 특별하지는 않다. 중요한 것은 연결 방식과 데이터 표준화 시도다. 정부 부처, 지자체, 사업자들이 각기 다른 포맷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면 AI가 이를 학습하거나 예측 모델로 변환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구룡포항 시범사업에서는 데이터 포맷과 통신 방식의 표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수온 데이터는 단위, 측정 주기, 저장 방식이 통일돼야 하며 센서와 서버 간 통신도 공통 규약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표준화 없이는 아무리 좋은 장비를 설치해도 실질적인 디지털 활용은 어렵다.

또한 공간 단위의 통합 관제가 필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해양경찰, 지자체, 해수부가 서로 다른 CCTV를 관리하거나 수온 정보와 유통 정보를 분리된 시스템에서 보면 연계가 불가능하다. 구룡포항은 이러한 문제를 공동관제센터 구축을 통해 해결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조업안전, 치안, 수산물 유통 흐름까지 통합 관리가 가능해졌다. 구룡포항은 ‘어디에서 잡아 어디로 보내는가’라는 어촌의 단순한 구조를 데이터 흐름에 맞춰 정제하고 연결함으로써 AI에 최적화된 학습 환경을 제공한다.

# 작지만 정교한 모델 : 어촌이 AI에 더 유리하다

많은 사람이 AI를 자율주행차, 스마트시티, 메타버스 등 거대한 도시 기술로 생각하지만 AI 전문가는 반복되는 패턴, 예측 가능한 환경, 명확한 구조에서 AI가 가장 잘 작동한다고 말한다. 이는 바로 어촌의 특성과 일치한다. 어선이 조업을 위해 어항에 정박하고 면세유와 얼음 등을 보급받으며, 조업 후 수산물을 어항에 양륙하고 소비지로 팔려나가는 활동이 정해진 패턴 속에서 반복된다. 유통 경로도 단순하며 기상 정보는 충분히 축적돼 예측 가능하다.

복잡한 도시 환경에 비해 더 단순하고 명료한 어촌은, AI 기술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작지만 정밀한 실험장’이다. 지방의 구룡포항은 이러한 ‘작지만 정교한 AI 모델’의 교재가 돼 어촌 AI 전략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 부처 칸막이와 표준 부재를 넘어서

AI 등 4차 산업혁명기술이 어촌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 우선 부처간 칸막이 행정의 문제가 해소돼야 한다. 어항, 항만, 유통, 자원, 어선 안전, 선박 환경 등 관련 부서들이 각각 따로 움직여 어촌이라는 전체 공간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시야가 부족하다. 어촌은 수산업에 국한된 공간이 아닌 생산·유통·생활·환경·안전·교통·인구가 복합적으로 얽힌 공간이기에 정책 또한 공간 단위로 통합 설계돼야 한다. 둘째로 조성 중심 정책 구조도 문제점으로 지목된다. 예산이 장비 설치에만 투입되고 데이터 운영을 위한 조직과 인력 예산은 환원되지 못하고 있다. 셋째 데이터 표준 부재도 없다. 지역마다 데이터 포맷과 통신 규격이 달라 AI가 활용할 수 없는 구조로 남아있다. 아울러 실증 기반 사업의 지역 편중 역시 과제로 남아있다. 시범사업이 특정 지자체나 공모 선정 방식에만 의존하면 전국적 확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 미래 어촌을 위한 해법: ‘실행 플랫폼’과 ‘통합 거버넌스’

미래 어촌마을을 위해서는 실행 플랫폼으로의 전환과 함께 통합적인 거버넌스가 필요하다. 단순히 장비를 설치하는 것을 넘어, 데이터 수집→분석→예측→실행→피드백의 정책 순환 체계를 설계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가칭) ‘어촌공간 디지털플랫폼 추진단’ 같이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환경부, 행정안전부 등 범부처가 함께 정책을 기획·운영하는 거버넌스 도입도 필요하다. 어촌은 이제 해수부 혼자 해결할 수 없는 복합 공간이기 때문이다.

또한 데이터 양식, 통신 규격, 응용프로그래밍인터페이스(API)를 통일하고 AI 학습이 가능한 공공데이터 어촌 플랫폼으로 발전시켜야하며 지역 기반 ‘AI 실증 모델’의 전국 확산이 필요하다. 단순 시범사업을 넘어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권역 표준을 정립하고 실제 어업인의 판단을 돕고 행정과 연결되는 실전형 AI 모델로 발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흔히 AI를 거대한 도시 기술로 생각하는 동안 국민 곁에 가장 먼저 도착할 AI는 이 작은 어촌 구룡포항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곳에서는 AI가 바다의 신호를 읽어내고 사람은 그 데이터 기반의 ‘말’을 듣는다. 디지털과 AI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어촌에 사는 사람, 어촌을 찾는 사람, 그리고 어촌을 지키는 사람들이 어떻게 더 안전하게 효율적으로 지속가능하게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이다. 지금 구룡포는 어촌의 미래를 위한 리허설이 한창이며 조만간 그 무대는 대한민국 전체로 확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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