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진 한국해양수산개발원 어촌사회연구실 연구원
낡은 창고가 창작공간, 해양쓰레기가 생활소품으로
비어업적 귀촌의 새로운 모델

[농수축산신문=김동호 기자]

 

파도가 밀어놓고 간 해양쓰레기 더미 사이로 한 창작자가 허리를 굽혀 연신 무언가를 주워 담는다. 주워 온 부표와 폐목재, 녹슨 쇳조각들은 그의 손을 거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바다에서 온 쓰레기에 상상력을 입혀 예술품과 생활소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Upcycling) 예술 프로젝트, ‘바다쓰기’의 이야기다​.

2013년 인천에서 가족과 함께 제주 애월읍으로 이사 온 김지환 바다쓰기 대표는 바닷가 마을에서 마주한 해양쓰레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가족이 잠든 사이 작은 작업실에서 주워 온 부표를 씻고 표류목에 톱질과 못질을 더하며 작품의 밑그림을 그렸다​. 김 대표는 쓰레기를 ‘잘 쓰는’ 방법을 찾겠다는 다짐을 담아 이 프로젝트를 ‘바다쓰기’라고 이름지었다.

 

# 어촌 마을에서 피어난 업사이클링

제주 애월읍 하귀리에 위치한 바다쓰기는 농산물 창고로 활용하던 공간을 김 대표가 직접 꾸며 활용하고 있다. 폐창고였던 공간은 부서진 양식장 부표, 갈라진 스티로폼 부스러기, 표류목 등을 인테리어에 활용했고 내부에 사용되는 가구 등은 버려진 가구를 재활용해 만든 것이다.

교육장소를 버려진 물건을 재활용해 꾸민 김 대표는 교육과정에서도 바다쓰레기를 직접 수거하는 것에서 시작하도록 했다. 기업, 공공기관, 학교 등 다양한 기관과 기업, 단체에서 온 교육생들은 바다쓰레기 수거 과정에서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느끼고 바다쓰레기를 재활용한 창작활동까지 이어간다.

김 대표는 교육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바다쓰레기를 활용한 창작물을 선보이고 있다. 버려진 재료를 활용해 벽시계와 작은 배 모형, 조형물 등 상상력으로 채운 작품을 선보였다. 김 대표는 작은 카페 한켠에서 전시회를 열어 작품들을 일반인들에게 선보였고 이는 곧 입소문을 타게 됐다. 또한 제주 곳곳의 플리마켓에 나가 바다쓰레기를 활용한 작품을 선보이고​ 마을 행사에 참여하면서 주민들과 관광객들이 이 특별한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

 

# 주민·외부인 협업으로 되살아나는 어촌 공동체

바다쓰기는 어느새 한 개인의 작업을 넘어 지역 공동체와 어우러지는 프로젝트로 성장했다. 김 대표는 2017년부터 섬 생태전문가, 해양안전 강사 등과 손잡고 해양문화교육협동조합을 결성해 활동 반경을 넓혔다. 보다 체계적으로 해양 환경교육과 문화사업을 펼치기 위한 지역 협력의 시작이었다.

바다쓰기가 있는 애월읍의 ‘돌창고 바보리(바다가 보이는 마을)’ 공간도 이제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5명의 예술가가 ‘힘을 모아 제주, 바다를 닮다’ 전시회를 열어 해양쓰레기 문제를 예술로 조명했다​. 전시 기간 중 매주 목요일마다 지역 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참여하는 업사이클링 생활소품 만들기 체험 행사를 열어 버려진 물건으로 직접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 즐거움을 나눴다​.

어촌의 낡은 창고는 마을 주민과 외부 예술가의 협업을 통해 아이들과 어른들로 북적이는 창의적인 놀이터로 변신하고 있다. 바다쓰기가 어촌 재생의 한 모델로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쓰레기로 몸살 앓던 해변은 예술 작업을 위한 보물창고가 됐고 폐건물이었던 공간은 전시관이자 교육장으로 탈바꿈했다.

김 대표는 어린이와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환경교육에 특히 열정을 쏟고 있다. 그는 애월읍의 어린이집부터 제주도내 초등학교, 마을회관까지 어디든 달려가 업사이클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교육을 받는 사람들은 바닷물에 닳은 유리(씨글래스)와 녹아내린 플라스틱(파이로플라스틱), 육지에서 내려온 유목, 미세플라스틱이 되기 전의 작은 플라스틱 조각 등을 활용해 인형과 촛대, 시계, 액자 등 다양한 작품을 만들게 된다. 해양쓰레기를 활용한 체험에 더해 해양환경문제나 기후변화, 탄소중립 등 바다와 관련한 다양한 교육이 함께 이뤄진다. 이같은 교육은 교육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으며 연 평균 교육생은 4000~5000명 수준이다.

김 대표는 “한번 이뤄지는 교육에 적게는 10명, 많게는 100명까지 참여하며 평균적으로는 20명 내외의 규모로 교육이 이뤄진다”며 “단순히 쓰레기 문제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해양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기후변화 등에 대해서도 교육프로그램에서 함께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

 

# 어촌공동체와 함께하는 프로젝트 필요

김 대표는 창작자들이 어촌에 정착해 어촌공동체와 함께 하는 것이 어촌활력제고에 최선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어촌현장에 대한 이해 없이 문서로만 지역을 인지하고 사업이 추진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이유다.

실제로 비양도에서는 자연환경을 적극 활용, 아름다운 별을 보며 별자리 이야기를 하겠다는 아이템이 제시된 바 있다. 하지만 비양도 인근에는 조업하는 어선이 많으며 어선이 사용하는 집어등때문에 별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즉 지역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제안되는 사업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또한 어촌공동체와 별개로 이뤄지는 마을활성화사업 역시 지속가능성이 낮다. 최근에 청보리로 유명세를 탄 가파도의 경우 큰 돈을 들여 창작자들의 작업공간이자 거주공간인 아티스트 인 레지던스(AiR)를 조성했으나 마을주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마을 주민들은 늘어난 관광객으로 인해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섬을 찾은 관광객들이 마을 주민들의 집에 들어가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 등의 행동으로 어촌사회의 평온이 깨지는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다. AiR을 위한 재정지원이 중단되면서 창작자들이 가파도를 떠나게 되면 그간 가파도에서 이뤄지던 다양한 전시활동도 멈춰서게 되고 결국 건물만 남게 될 공산이 크다. 이는 어촌공동체와 괴리된 지역의 개발이 가지는 한계를 보여준다.

# 바다쓰기에서 본 귀촌의 새로운 길

정부는 2023년 발표한 ‘제2차 귀어귀촌 지원 종합계획(2023~2027)’에서 수산업 중심의 정책 틀을 넘어 관계인구 확장, 로컬크리에이터 양성, 청년 정착지원 등 어촌 유입 확대를 위한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실제 제도의 운영실태를 들여다보면 창업지원의 범위는 여전히 어선, 양식장, 해양레저산업에 집중돼 있다. ‘귀촌’이란 이름을 붙였지만 실상은 ‘수산업 중심 귀어 정책’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셈이다.

김 대표 역시 이같은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 대표는 한국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의 해양관광벤처 지원사업으로 지원을 받았다. 이는 귀촌 정책이 아닌 해양관광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지원사업이다. 그가 제시하는 ‘환경 메시지를 담은 창작 체험’은 어촌공동체에 문제가 되는 해양쓰레기 문제 해소에 기여하는 방안인 동시에 어촌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는 새로운 어촌비즈니스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김 대표의 바다쓰기는 어촌공동체와 단절된 해양관광산업에 그치게 된다.

그러나 바다쓰기의 사례는 귀촌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다. 고기를 잡지 않아도 어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식은 얼마든지 있다. 실제로 인천 영흥도에 위치한 영암어촌계에는 사진작가가 계원으로 가입돼있다. 해당 작가는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을 촬영,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공유하면서 영암어촌계를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렸다.

이같은 사례는 예외일 뿐이며 현재 귀어·귀촌 정책은 ‘수산업 관련 사업’을 전제로 자금과 교육, 정착 지원을 설계하고 있다. ‘창의적이지만 비어업적’인 귀촌희망자들은 귀촌 정책의 대상에서 여전히 제외돼 있다.

이제는 전환이 필요하다. 귀어·귀촌 정책은 수산업에 국한된 진입 기준에서 벗어나 마을 기반의 문화·교육·환경 활동을 아우르는 형태로 확대돼야 한다. 공간 재생, 환경예술, 체험 교육 등 지역 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활동가들을 위한 맞춤형 창업·정착 지원 제도 그리고 문화 기반 귀촌인의 활동이 지역 공동체에 미치는 긍정적 효과를 반영한 정책평가 기준도 함께 요구된다.

지속가능한 어촌을 위해 귀어‧귀촌 정책은 이제 어업 중심의 틀을 넘어 마을 단위의 다양한 정착 방식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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